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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인 뉴스 ) 기자 수첩 포석정을 둘려보고..

석구는 깨어져 있고 / 주변 관리 부실 / 체험 공간으로 활용

작성일 : 2019-07-06 17:00 수정일 : 2019-07-06 17:00 작성자 : 손상욱 기자 (wook@hanmail.net)

신라 천년 사직을 내리게 한  포석정

지금은 물과 술잔은 없고 대한민국 사적 제 1호가 관리 부실로 볼품이 없다.

동네 어린이들 놀이장을 방불케 한다.

 

해서 포석정을 체험 공간으로 꾸며 보는 관광에서

체험 공간으로 활용 나라 사랑 국민 정서를 기리야 한다.

 

(6월30일 모습)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경주 남산의 서쪽에 있는 석구 사적 제 1 호 포석정(飽石亭)

석구는 오랜 풍파에 부분 깨어져 있고

 

이곳이 과거 왕이 연회를 가진 곳인지 반문이 들고

현재는 자연석으로 울타리를 쳐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찾는이는 밖에서 눈으로 보고 기념 사진 찍는것이 전부다.

 

문화재에 따라 관리도 다르겠지만

포석정은 물을 흐르게 해서 잔을 뛰워 보는 체험 문화재로 활용

 

선조들의 정서 함양과 신라 천년 사직의 단초를 제공한 역사를 거울삼아

부국강국(富國强國) 문화대국을 배우도록 하자

 

 

통일신라 927년 경애왕이 왕비 ·궁녀 ·신하들과 놀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은 곳

역사는 55대 경애왕 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 하고 있다

 

왕 즉위 4년 (927) 9월 후백제 견훤의 침공에 

왕은 고려 왕건에게 도움을 청해놓고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다가

 

신하와 함께 죽음 을 당한 후 견훤의 지배하에 약탈 등

온갖 수모의 여파로 신라 천년의 종말을 내리게 했다고 포석정을 설명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했다.

신라 천년 사직은 흐르는 물과 술잔에 씻겨 지금은 석물만 남아 있다

 

면적은 7,432m²  폭은 약 35cm, 깊이는 평균 26cm, 전체 길이는 약 10m

남산 계곡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거북 모양의 큰 돌이 있었고,

그곳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어 졌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 조차 없다.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다 후백제 견훤에게

 

붙잡혀 자살을 강요당해 결국 자살했다

 

신라의 지배계급이 맑은 계곡의 물을 끌어와

곡수(曲水)를 만들고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일상일영(술 한 잔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는 놀이)

하면서 정치와 국사에 지친 마음을 달래던 휴식의 장소였다고

역사는  말한다.

 

경주시의 문화재 관리 발상의 대 전환을 기대 하며

관련 공무원은 포석정을 새롭게 단장하길 주문 한다.